또래들과 친하게 지내라.
두 번째로 내가 대학원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또래들(동기, 선후배)과 잘 지내라는 말이다. 대학원에 와서 공부만 잘하면 되지 왜 사람들하고 잘 지내야 하냐고? '그냥 두루두루 잘 지내면 좋으니까'라고 답할 수도 있지만, 굳이 이유를 대보자면 이렇다.
(1) 대학원 생활의 고충을 나눌 수 있다.
대학원생활은 바쁘다. 수업도 들어야 하고, 조교 일도 해야 하고, 연구도 해야 하고, 전공에 따라서는 현장실습도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게 된다. (여기서의 '학교'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학교를 뜻하기도 하지만, 지금과 같이 원격교육이 일상화된 시대에서는 학업수행을 하기 위한 시스템을 이야기한다고 하는게 맞겠다) 그러니 주로 상호작용하게 되는 사람들이 지도교수, 또래학생, 교직원 등이다. 대학원생활 전체의 만족도는 지도교수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또래학생들과의 관계가 좋다면 지도교수와 썩 편하지 않은 관계여도 나쁘지 않은 대학원생활을 할 수 있다.
또래 학생듥과는 교수 뒷담화도 하고 수업에서의 고충도 이야기하고 이런저런 학업스트레스르르 나눌 수 있다. 이건 정말 중요하다!! 대학원생활은 다소 독특(?)한 구석이 있어서 대학원생활을 하지 않은 친구나 가족에게 이야기하려면 설명이 많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일일이 배경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게 많다. 그러니 아무래도 대학원생활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고민을 터놓는 것이 도움이 된다. 심지어 전공이 달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능하다. 내가 유학시절에 한국인 유학생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다들 전공이 달랐다. 경영학, 컴퓨터공학, 화학, 정보과학 등등.. 하지만 대학원생활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하면 서로 공감도 잘해주고 많이 지지해주었다. 힘든 유학시절 참으로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었다.
(2) 학문적인 이야기를 편하고 자유롭게 나눌 수 있다.
여러분의 학문적인 가이드는 지도교수가 해주겠지만, 지도교수와 나누기에는 애매한 이야기도 있다. '이런 사소한 생각까지 교수와 이야기 나누어도 될까?'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어쩔때는 편하게 바보같은 아이디어들을 막 늘어놓고 싶을 때가 있다. TV보다가 떠오른 이야기나 만화보다가 생각난 것들 같은 것 말이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교수에게 하는게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학생입장에서는 그냥 좀 민망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또래 대학원생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좋다. 서로 깔깔대면서 '그게 말이되냐'고도 하고 '진짜 웃기다'고 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 대화가 좋은게 뭐냐면, 편하게 이야기하다가 실제로 연구 아이디어가 괜찮은게 나오기도 하고, 심지어는 미래에 사업을 같이 해보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엉뚱한 이야기로 끝나도 상관없다. 그래도 그런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런 것들이 영감이 되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언젠가는 도움이 된다.
(3) 인생을 크게 놓고 보면 지도교수보다 더 오래갈 인연들이다.
가족학 공부를 하는 동안 가장 재미있게 공부했던 가족관계가 형제/자매 관계이다. 부모-자녀 관계, 부부 관계, 조손관계 등등 가족 안에 여러 관계들이 있지만 형제/자매 관계는 독특하다. 독특한 점 여러 개 중 하나는 바로 관계의 유지기간이다. 형제/자매관계는 어느 가족관계보다도 가장 긴 기간동안 지속된다. 부모는 보통 먼저 돌아가시기 때문에 40-50년 정도의 관계를 갖는다. 형제/자매들은 나이터울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간에 큰 사고가 나는 일이 없다면 거의 나의 수명과 가까운 시간동안 지속된다.
또래 대학원생들은 비유하자면 형제/자매관계와 비슷하다. 지도교수와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졸업후에 더 지속적으로 수시로 연락하는 건 또래 학생들이다. 나도 석사과정 때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과는 지금도 안부를 묻고 살고 지낸다. 박사과정 때 만났던 친구들은 다 외국에 뿔뿔이 흩어져 사니까 국내 친구들보다 자주 연락은 못해도 1-2년에 한번쯤은 스카이프로 통화도 하고, 경조사가 있을 때는 서로 이메일도 한다. 꼭 학문적 이야기를 하는건 아니다. 아니, 사실 그런 이야기는 거의 안한다! 그냥, 어떻게 사느지, 애는 얼마나 컸는지, 요즘 고민은 뭔지.. 그런 이야기한다. 사람 사는게 무엇인가. 대학원에 왔으니 학업적 성과를 이루는 것도 물론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나중에 돌아보면 진짜 '남는 것'은 사람인 것 같다. 난 공부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참 감사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