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관습적으로 형식이 많은 나라이다 보니 형식에 대한 편견들이 많다. 형식은 나쁜 것이고, 없애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지나친 형식은 좋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적당한 형식은 필요할 때가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논문은 특히 형식이라는 것이 비교적 정해져있기 때문에 이 형식을 잘 따르는 것은 중요하다. 왜 중요하냐 하면, 이것이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논문쓰기에서의 중요한 형식은 서론-문헌고찰-방법-결과-논의-결론 등의 형식을 말하기도 하지만, APA style이나 Chicago style과 같은 서식도 포함한다.
비교적 정해진 형식이 있다는 것은 그 업계 사람들은 주로 그 형식을 따라 소통한다는 뜻이다. 비즈니스에 있는 사람들은 워드문서보다는 ppt장표로 이야기를 많이 한다든가, 법조인들은 법률문서를 만들어 소통한다. 연구하는 사람들은 논문이라는 형태로 가장 많이 소통한다. 그런데, 논문의 형식을 벗어나서 쓴다는 것은 마치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언어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한국어로 소통을 하면서, 내가 한국어의 문법(즉, 형식)을 지키지 않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해보자.
"이 국수는 멸치육수를 사용해서 국물맛이 담백합니다"라는 말을 "멸치육수를 담백합니다 이 국물맛이 국수는 사용해서"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것은 형식의 파괴이다. 듣는 사람이 머리를 쥐어짜면 이해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리고 분명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자칫 "형식의 파괴"라는 것에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 아니, 형식을 파괴하는 것은 창의적인 거 아닌가? 왜 꼭 정해진 틀로 논문을 써야 하는가? 라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 말도 전적으로 반대하진 않는다. 실제로 최근 학술지들도 조금씩 새로운 형식을 적용하는 곳들이 생기고 있다. 예를 들어, 20페이지짜리 글 대신에 15분짜리 영상으로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는 것을 만들어 업로드한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물론, 아직은 이런 새로운 형식은 걸음마 수준이라 대체로 글로 된 논문에 부차적으로 만드는 것들이기는 하다. 아무튼, 이렇듯 형식도 바뀌어갈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연구의 창의성은 형식보다는 생각하는 방식, 연구하는 방식에 더 많이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시 원래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겠다. 논문은 먼저 내용이 알차야 한다. 논리가 정연해야 한다. 말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알맞게 들어간 후에는 형식도 다듬을 필요가 있다. 논문심사를 하면서 (학술지 심사든 학위논문 심사든)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는 논문을 무수히 보았다. 작성자는 이를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아서 지키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는데, 형식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 아니다. 손님을 초대해서 맛있는 요리를 대접할 때, 요리를 정성스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깨끗한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는 것까지가 손님접대이지 않은가. 논문도 충실한 재료로 잘 요리되었다면,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은 후에 독자에게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논문을 보면,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렵다. 나는 학생들이 형식을 절대로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