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많은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자기의 관심분야'를 정하는 것이다. 나조차도 석사과정 당시에는 그랬던 것 같다. '상담'이라는 영역에 관심이 있어 상담전공을 선택했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확신이 있으니 대학원에 들어왔을 거다. 대부분 00전공을 택해서 입학할테니 말이다. 그 다음에 거기서 좀 더 좁혀가는 것이 문제다. 나는 직장생활을 한 후에 석사과정에 입학했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직장인 상담에 관심이 있었다. 내가 대학원과정을 지원할 때 가장 크게 가졌던 의문이 '왜 회사에 다니는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행복해보이지 않을까'였다. 그래서 이 문제를 상담을 통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지원했었고 운이 좋게 합격을 했던 것이다.
대학원 과정동안 이런저런 수업도 듣고 책도 읽으면서 이 영역을 계속 좁혀나가야 한다. 결국 대학원생활을 마칠 때는 이것을 '논문'이라는 형태로 작성하게 되는데 이 때 논문의 주제 혹은 연구주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 때를 대비(?)해서라도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학생들도 끄덕끄덕한다. 그 다음 질문은 거의 대부분 '그런데 어떻게 구체화해요?'다. 이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왜냐하면, 나도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지금과 과거를 비교하면 분명 구체화한 것 같긴 한데, 어떻게 했는지는 나도 명쾌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과거를 돌아볼 때, 도움이 되었던 것들을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건 여담이지만, 10년 넘게 연구활동을 하면서 마음에도 중력이라는게 있나 생각한 적이 있다. 청소년 시기에 고민이 많았지만 어디에도 털어놓기 힘들어 했었는데, 그 때 속으로 '청소년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석사과정을 상담전공으로 가긴 했지만, 박사과정은 다른 전공으로 갔기에 나는 이제 청소년상담과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간발달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연령대 중에서도 나는 특히 청소년 대상의 연구에 많이 끌렸다. 변화가 많고 고민도 많고 희망도 많은 딱 그 나이대가 뭔가 활력 넘친다고 느꼈다(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자연스레 나의 연구대상도 청소년이 많아졌는데, 그 때 나의 청소년기 꿈이 떠올랐다. 아, 벗어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청소년'이라는 키워드로 회귀하는 걸 보면 뭔가 내 마음 안에 중력 같은게 작용하는 건가 싶었다. 이것이 내가 맨 처음 이야기한 '끌림'과도 통한다. 자신이 끌리는것을 따라가다보면 가장 '나'에 가까운 '나다운' 것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사실을 알면, 나의 길을 벗어나는 것 같은 시도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의 끌림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실제로는 그것이 나의 세계의 '확장'일 뿐, 궤도를 벗어나는 것을 아닐테니 말이다.
대학원 과정동안 이런저런 수업도 듣고 책도 읽으면서 이 영역을 계속 좁혀나가야 한다. 결국 대학원생활을 마칠 때는 이것을 '논문'이라는 형태로 작성하게 되는데 이 때 논문의 주제 혹은 연구주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 때를 대비(?)해서라도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학생들도 끄덕끄덕한다. 그 다음 질문은 거의 대부분 '그런데 어떻게 구체화해요?'다. 이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왜냐하면, 나도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지금과 과거를 비교하면 분명 구체화한 것 같긴 한데, 어떻게 했는지는 나도 명쾌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과거를 돌아볼 때, 도움이 되었던 것들을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 다양한 문헌을 읽어 보면서 내가 어떤 주제에 끌리는지 잘 관찰하라. 그리고 그 끌림을 계속 따라가라.
석사과정 때 존경하는 교수님 중 한 분이 해주셨던 이야기다. 당시에는 이 말을 듣고 사실 많이 의아했다. 아니, 가장 이성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곳이 학문세계가 아닌가? 그런데 내 '끌림'을 따라가라니. 그렇게 감성적인 말을..?? 그런데 나도 좀 더 공부해보니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리고, 참 좋은 조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끌림이 없는 주제는 오래가지 못한다. 끈기와 인내가 강한 사람들은 어찌어찌 붙들고 하기도 하지만, 끌리는 주제를 탐구하는 학자들은 정말 오래 그 문젤르 붙들고 있는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굉장히 크거나 그 자체가 너무너무 재밌거나 한 것 같다. 연구라는 행위는 인내와 성실성이 필요하다. 결과가 금방 나오는 행위도 아니다. 하고 싶은 주제를 붙잡고 연구를 해도 힘들고 지치는데, 끌림이 없는 주제를 하면 어떨까? 금방 포기하고 나가 떨어진다. 내재적 보상도 없다. (연구를 통해 외재적 보상을 바란다면 지금 그만둬도 된다. 당신이 대학원을 올 정도의 능력이라면 단언컨대 다른 어디를 가도 당신의 능력을 발휘할 곳은 있을 것이니 걱정 안해도 된다. 마음 편하게 그만둬도 된다.) 대부분 연구자들은 자신의 만족이나 성취감 등을 동력으로 삼아 일을 한다. 그런데 끌림없는 주제를 하면 그나마 있는 내재적 보상조차도 없어지는 꼴이 된다. 그러니 꼭 자기가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주제를 찾는 것이 좋다.
참 신기하게 사람마다 끌리는 주제가 다르다. 같은 영역 안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똑같이 '직장인 스트레스'연구를 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은 '스트레스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에 더 관심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 관리하는 방법'과 같이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을 수 있다. 또, 똑같이 스트레스 해결방법에 관심이 있더라도 어떤 사람은 1:1 상담과 같은 방식의 해결에 관심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나 훈련에 더 관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끌림을 따라가다보면 분명히 자기만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만날테니 크게 걱정하지 말고 그 길을 따라가 보길 바란다. - 무언가를 읽을 때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라.
예를 들어, "한국 중학생들의 수학점수가 미국 중학생들의 수학점수보다 대체로 높다고 한다"는 연구결과를 일었다고 치자.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한국 중학생들이 미국 학생들보다 공부시간이 많은가? 한국 수학선생님들이 미국 선생님보다 잘 가르쳐서인가? 한국학생들이 사교육을 많이 해서인가? 한국사람들의 뇌구조가 미국사람들보다 수학에 더 적합해서인가? 등등등.... 이러한 질문은 다른 문헌을 더 읽게 도와준다. 한국학생과 미국학생의 공부시간에 대한 연구, 교사에 대한 연구, 사교육에 대한 연구 등을 찾아보다보면 이 중에 답이 명쾌하게 나오는 것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을 것이다. 명쾌하지 않은 답이 있다면, 그것은 연구문제로서의 잠재적인 가치를 갖게 된다. - 산발적으로 읽기보다는 우선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충분히 읽어라.
내가 만약 '한국대학생들의 전공만족도'에 대한 주제에 관심이 생겼다면 그 주제에 대해 충분히 읽어보길 권한다. 여기서 '충분히'란 매우 주관적인 단어이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의 '충분히'가 2-3개 정도의 문헌은 아니라는 정도는 이야기해줄 수 있다. 한국 대학생들의 전공만족도와 관련한 논문을 1개 읽고, '아, 그렇구나'한 뒤 완전히 새로운 주제에 대해서 논문을 찾아 읽는 경우들을 보았다.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 읽기도 목적과 필요에 맞게 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자신의 관심영역을 찾는 과정이라면 논문 1편을 읽고 찾겠다고 하는 것은 무리이지 않을까? 그것은 마치 미술 수업을 1시간 들어보고, '아, 나는 미술을 좋아하는 것 같아(또는 싫어하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최소한 미술 수업 중에 뎃생도 해보고, 수채화도 해보고, 구성도 해보고, 디자인도 해본 다음에 '아, 나는 생각보다 미술을 정말 싫어하는구나' 또는 '아, 나는 미술 중에서 구성은 좋아하지만 다른건 다 안 좋아하는구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꽤 충분히 그 주제에 대해 아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그것에 대해 내가 다른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라. 여러분이 공부하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가족이나 친구)을 붙잡고 이야기를 시작해보라.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전공만족도는 다른 나라랑 비교해서 ~하대. 학자들이 연구해본 결과, 그 중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는 X, Y, Z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렇다고 X, Y, Z 가 없으면 전공만족도가 있느냐, 그것도 아니라는거야~ ...."하면서 줄줄줄 이야기해봐라. 만약 그 주제에 대해서 5분 정도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건더기가 있다면 아주 좋은 출발이다. 상대방이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그런데, 전공만족도가 안 좋은게 그냥 우리나라의 입시위주의 교육풍토 때문일 수도 있잖아"라고 반문했을 때, 여러분이 이에 대해 꽤나 합당한 근거를 들어 설명할 수 있다면 비교적 아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버리는 것을 두려워 마라.
자신의 관심분야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관심분야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어떤 이는 매우 흥분하기도 한다. '아~~ 어떡해!!! 이것도 재밌고 저것도 재밌어!!! 꺅~~' 하지만, 어떤 이는 걱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어떡하지? 이것도 저것도 좋고... 하나만 고르기 어려운데... 다 하고 싶은데... 어떡해 ㅠㅠ' 여러 가지 관심이 있다면 우선은 좋은 징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그 분야에 열정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 하지만 걱정할 필요도 없다. 여러분이 여러 개 중 하나의 길을 간다고 해서 나머지를 배신하는게 아니다! 그리고 아까워할 필요도 없다! 내가 A라는 주제에 대해서 꽤나 깊이 탐구했는데 A가 아닌 B라는 주제를 접하면서 B주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한다고 해서 내가 쌓은 A에 대한 지식과 전문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지식은 언젠가는 써먹을 지식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연구관심분야를 너무 자주 바꾸거나 바꿀 때 그 거리가 매우 먼것들로 바꾼다면 좀 더 신중할 필요는 있지만, 큰 범주 안에서 내 학문영역의 주제라면 나중에 어디서든 다 만나게 된다.
이건 여담이지만, 10년 넘게 연구활동을 하면서 마음에도 중력이라는게 있나 생각한 적이 있다. 청소년 시기에 고민이 많았지만 어디에도 털어놓기 힘들어 했었는데, 그 때 속으로 '청소년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석사과정을 상담전공으로 가긴 했지만, 박사과정은 다른 전공으로 갔기에 나는 이제 청소년상담과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간발달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연령대 중에서도 나는 특히 청소년 대상의 연구에 많이 끌렸다. 변화가 많고 고민도 많고 희망도 많은 딱 그 나이대가 뭔가 활력 넘친다고 느꼈다(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자연스레 나의 연구대상도 청소년이 많아졌는데, 그 때 나의 청소년기 꿈이 떠올랐다. 아, 벗어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청소년'이라는 키워드로 회귀하는 걸 보면 뭔가 내 마음 안에 중력 같은게 작용하는 건가 싶었다. 이것이 내가 맨 처음 이야기한 '끌림'과도 통한다. 자신이 끌리는것을 따라가다보면 가장 '나'에 가까운 '나다운' 것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사실을 알면, 나의 길을 벗어나는 것 같은 시도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의 끌림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실제로는 그것이 나의 세계의 '확장'일 뿐, 궤도를 벗어나는 것을 아닐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