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대충 안다. 수업도 하고 연구도 하고 학생지도도 한다. 하지만, 내가 교수가 일하는 걸 "보는" 순간은 내가 지도를 받거나 내가 수업을 들을 때 뿐이라서 어쩔 때는 도대체 교수가 왜 바쁜지, 무얼 하느라 바쁜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도 학생 때 그랬던 것 같다. 교수의 삶을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그런데도 교수들은 늘 "아우, 바빠 죽겠어"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다. 그들은 왜 바쁜가. 무엇때문에 바쁜가.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혹시나 오해할 수 있을까봐 미리 일러두는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 바쁘니까 연락하지마"가 아니다. 학생은 당연히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학생은 필요할 때마다 교수에게 연락을 하고 면담을 요청할 수 있다(요청해야 한다!). 교수가 바쁘면 일정 조율은 가능하지만, 교수가 바쁘다고 해서 학생을 만나주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고 혹여나 '우리 교수님 저렇게 바쁘신데 내가 연락드리면 싫어하시겠다', '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오히려 앞으로 교수직업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일을 하게 될 것이다라는 걸 알려주는 목적이 더 크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여러분 눈에 안 바빠 보여도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내가 오히려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있는지도 모르겠다.
연구하느라 바쁘다
연구하느라 바쁜 건 학생들이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닐까 싶으면서도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특히, 연구경험이 아직 많지 않은 학생일수록, 연구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하나의 연구를 수행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일이 필요한지 가늠이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자기 연구를 해 본 학생들은 알 것이다(대부분, 학위논문을 작성하면서 제일 잘 알게 된다), 연구를 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는지.
문헌도 읽어야 하고, 자료수집도 해야 하고, 자료 정리도 해야 하고, 자료 분석도 해야 하고, 자료분석이 끝나면 글도 써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공동연구자나 공저자들과 소통해야 하고,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실험이나 연구가 실패하면 또다시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연구를 하면 바쁠 수밖에 없다.
수업하느라 바쁘다
수업과 관련해서는 왜 바쁠까? 3학점짜리 수업을 기준으로 보자. 1주일에 세 시간은 수업을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수업시간만 수업과 관련해서 사용하는 시간은 아니다. 대학원생에게는 매우 익숙할 법한 20-30분 정도 되는 프레젠테이션을 생각해보라. 본인은 20분짜리 발표를 준비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을 쓰는가? 그 계산을 하고 나면 세 시간 수업에는 준비 시간이 얼마 정도 드는지 계산이 나올것이다. 물론, 이 준비시간은 경력이 쌓일수록 다소 줄어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수업준비를 전혀 안할 수가 없다. 아는 내용이라도 미리 읽고 들어가야 내용이 기억나고, 전체적인 수업운영을 어떻게 할지 미리 구상을 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 시간은 모두 수업과 관련해서 바쁜 시간이다.
수업준비 외에도 수업운영 관련해서도 바쁘다. '운영'이라 함은 학생들의 출결관리, 학생들의 이메일을 확인하고 답변하는 것, 블랙보드(수업운영 사이트) 관리, 학생 과제물 채점, 수업 관련한 학생과의 면담 등을 포함한다. 이런 일 하느라 바쁘다.
학생지도하느라 바쁘다
교수는 석박사과정생들과 함께 공부한다. 석박사과정생들은 독립된 연구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이다. 그 과정에서 논문을 계속 쓰게 되는데, 이 논문에 대한 지도를 교수는 해야 한다.
논문지도를 위해 학생과 만나서 면담을 할 때는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작성한 글을 읽고 첨삭 비슷하게 피드백을 주거나 코멘트를 할 때도 있다. 이 작업도 만만치 않게 시간이 걸린다. 글을 읽고, 전체적인 논리가 어디가 약한지를 파악해야 하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어떤 것들을 학생이 더 생각해야 하는지를 글로 전달하는 일은 어렵다. 글로 전달하기 어려울 때는 전화로 면담을 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논문을 읽고 문제점을 파악하는 일 자체가 꽤 많은 인지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논문심사하느라 바쁘다
여기서 말하는 논문심사는 학생 논문심사가 아니라 학술지의 논문심사를 뜻한다. (물론, 학기말이 되면 논문심사로도 바쁘다.) 나는 외국학술지와 국내학술지에 투고된 논문들을 모두 심사하는데, 영어로 된 논문은 보통 읽고 심사의견 쓰는 것까지 포함하면 평균 4시간 정도가 걸린다. 국어로 된 논문은 평균 2시간 정도는 걸리는 것 같다. 내가 편집위원으로 있는 학술지의 경우는 논문심사를 더 많이 하게 된다. 현재 내가 편집위원으로 있는 학술지만 4개 쯤 되어서 요즘은 논문심사를 정말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뭐하느라 바쁘냐고 물으면, 교수는 논문심사하느라 바쁘다.
추천서 작성하느라 바쁘다
대학원생들이 외국으로 공부하러 갈 때 지도교수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그래서 가끔 추천서를 작성해야 한다. 대학원생들이 인지도 있는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추천할 때도 추천서를 쓴다. 장학금을 받으려고 할 때도 추천서를 쓴다. 학부생들도 똑같은 이유(예: 유학, 장학금 등)로 추천서 부탁을 해 온다. 그리고,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 추천서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추천서 작성은 시간이 천차만별이긴 한데, 나의 경우에는 유학을 가려고 하거나 취업을 위한 추천서를 쓸 때는 제법 시간을 들여 정성들여 쓰는 편이다. 왜냐하면 학생의 당락이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글 자체는 A4로 2페이지를 넘지 않는 수준으로 작성하지만, 그 학생의 강점은 무엇인지, 특히 지원하려는 학교/학과의 특성을 고려할 때 어떤 강점을 더 강조해야 하는지 등을 고민하는 것이 시간이 걸린다. 아무튼, 유학/취업 추천서를 작성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시간이 제법 걸리는 일이다. 그래서 바쁘다.
외부 자문가 역할하느라 바쁘다
교수의 전공분야에 따라서는 외부 자문을 많이 할 수도 있다. 교육학분야는 아무래도 특성상 정부기관이나 정부출연기관 등에서 자문을 많이 요청하는 것 같다. 경영학 전공 교수들은 기업에서 자문역할도 하시는 것 같다. 그 외의 전공에서도 그 때 그 때 정부, 지역사회, 기업 등의 요구에 따라 자문역할을 많이 수행할 것으로 짐작한다.
외부 자문도 케이스마다 그 범위나 빈도 등이 다르다. 어떤 경우에는 1회성으로 자문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꽤 긴 기간동안 서로 약속하고 그 기간동안 정기적으로 만나 자문을 하기도 한다. 자문을 전화로 하기도 하고 미팅의 형태로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서면으로 자문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교수는 바쁘다.
교내 서비스하느라 바쁘다 (특강, 패널참여, 행정업무, 교내 자문위원 등)
임용초기에는 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이런 일은 적었는데,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학교 교양교육원의 요청으로 진로관련 교양과목을 개발하는 일을 하였다. 2학점짜리 수업인데, 주차별 수업계획을 세우고, 각 주차의 교안을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다. 말 그대로 하나의 수업을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내용은 어때야 하는지, 학습방법은 무엇이 적절할지, 참고자료는 무엇으로 해야 할지 등에 대한 조사/공부를 해야 하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문서화해야 한다.
이 외에도 특강을 해달라, 포럼에 패널로 와달라 등등의 요구가 있다. 그 외에 학교의 각종 위원회에 위원으로 회의참석도 해야 하고, 심의도 해야 하고, 결재도 해야 한다. 필요할 때는 면접에 동원되어 반나절 이상 인터뷰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요청을 수락할 수는 없지만, 내가 속한 조직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학교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쉽게 거절하기도 어렵다. 아무튼, 이런 일로도 자잘하게 바쁘다.
학회활동하느라 바쁘다
학생들에게 학회활동은 주로 내가 수행한 연구를 발표하는 일일 것이다. 교수가 되면 자신의 연구발표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회활동을 많이 하게 된다. 학회라는 것이 굴러가려면 누군가가 의사결정을 하고 일을 추진해야 한다. 많은 교수들은 학회 운영진(운영위원)으로 일한다. 그리고 보통은 1개 학회에만 몸담고 있는 것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A학회에서는 학술위원장으로, B학회에서는 국제협력위원장으로, C학회에서는 이사로... 이런 식으로 여러 학회에 걸쳐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학회에 따라 다르지만 분기별로 하는 회의에 참석도 해야 하고, 본인이 맡은 행사가 있을 경우에는 그 행사 준비하느라 바쁘다. 예를 들어, 내가 학술위원장일 때는 학술행사를 내가 맡아서 준비하게 되는데, 학회 주제를 결정하고 연사를 섭외하는 일과 같은 일을 내가 하게 된다. 이런 일 하느라 바쁘다.
예상치 못한 업무로 바쁘다
예상치 못한 업무라 함은 그야말로 예상이 안되어서 무슨 일이라 적기가 어렵다. 연구실에 앉아있으면 가끔 행정실에서 자료를 여청하거나 서류/신청서 등을 작성해달라고 부탁이 올 때가 있다. 또, 가끔 연구실에 문득 들르는 사람들이 있다. 교수들도 들르고 학생들도 들른다. 이 분들과 소통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업무의 일부이기 때문에 열심히 소통한다. 이래저래 교수는 바쁘다.